제19회 일본체험 콘테스트 입상자 강정구 여행일지 7, 8일차 - 미야자키 타카치호 | 2017.0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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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아웃을 하러 프론트로 내려오니, 전날의 미인 스태프가 앉아 있었다. 체크아웃 수속을 하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알고 보니 나와 그녀는 동갑이었다. 제 버릇 못 준다고 또 친구 운운했는데, 그녀는 의외로 자연스럽게 받아 넘겼다. 어렸을 적에 오사카 부에서 7년 정도 살았기 때문에 그 쪽 문화는 대충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그 다음부터 우리는 서로 편하게 말을 놓고 대화했다. 간밤의 책은 선(禅)에 대한 책이라고 했다. 과연 히피 느낌이 물씬 나는 곳이라고,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니, 입으로도 내뱉고 말았다. 그녀도 살풋 웃음을 지었다. 히피 문화와는 별개로, 나는 개인적으로 철학에 관심이 많다. 특히 불교 철학과 데카르트 철학의 유사성에 관련해, 비록 교양 과목이기는 했지만, 소논문을 써 본 적도 있을 정도였다. 선이라면 깊이 이야기를 나누어 볼 만한, 흥미로운 화제였지만, 슬슬 다음 목적지로 떠날 시간이었다. 아쉬운 작별을 나누고 게스트하우스를 나섰다.
기본적으로 큐슈에서는 버스로 이동할 생각이었으나, 미야자키 시로 향할 때에는 JR 로컬을 이용했다. 환승을 해야 하고 시간이 좀 더 소요되지만, 천 엔 가량 저렴하며 예약이 필요 없다는 것이 좋았다. 원래 일정이었던 아오시마 신사와 선멧세 니치난 방문을 생략하고 가고시마에 머물렀기 때문에, 곧장 타카치호로 향하기로 했다. 타카치호에는 저녁 7시에는 도착할 예정이었지만 도중에 사고가 일어나는 바람에, 좀 더 시간이 지체되어 밤 10시 가까이 되어서야 타카치호에 도착했다. 다행히도 숙소 측에서 마중을 나와 줘서, 편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2월은 비수기라, 유스호스텔의 손님은 나 혼자 뿐이었다.
다음 날, 식사로 미야자키 특산물 치킨난반을 먹고, 관광안내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본격적으로 타카치호 탐방에 나섰다. 숲 속에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의 쿠시후루 신사와는 달리, 아마노이와토 신사 앞은 관광지로서 상당히 개발되어 있어 대비를 이루었다. 길가에 늘어선 기념품 가게를 지나 아마노야스카와라로 향했다. 커다란 동굴 속에 도리이와 제단이 서 있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동굴 주위에 무수히 서 있었던 자그마한 돌탑들이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소원을 담아 하나 둘 쌓아 올린 것이 어느 새 잔뜩 모여, 또 하나의 절경을 이루어 낸 것이었다. (사진 1) 사실 이런 돌탑 자체는 한국의 서낭당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소원을 담아 돌을 쌓아 올린다는 행위는, 나라와 문화를 불문하고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일본 역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경을 넘어 기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돌아 나오는 길에, 길가에 서 있던 기념품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잠시 앉아서 가게에서 일하던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누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아주머니는 칸사이벤으로 말하는 외국인을 신기하게 여겼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가게를 나서려 하니, 멀리까지 와서 고생한다면서 기념 엽서를 주신다고 했다. 일본 신화를 그려낸 엽서가 벽면에 붙어 있었다. 세 장을 고르라고 하셔서, 아마테라스, 츠쿠요미, 스사노오를 한 장씩 골랐다. 나중에 숙소에 돌아가서 보니, 그림도 미려하고 인쇄 품질도 좋았다. 좋은 기념품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가방 깊숙히 보관했다.
다시 관광안내소로 돌아가 자전거를 반납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안내소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알고 보니 새로 오픈한 가게가 있는데, 일본어, 영어, 한국어로 안내문을 쓰고 싶다는 것이었다. 일본어와 영어는 어떻게든 되었지만, 한국어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서 곤란하던 차에, 일본어를 잘 하는 한국인인 내가 나타난 것이었다. 자신만만하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주변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한국인이 한국어로 글을 쓰는 게 그렇게 신기했을까. 안내문을 완성시킨 후, 안내소의 스태프에게 한/일 키보드 변환하는 법을 알려 주었다. 처음에는 한국어 키보드 설정을 없앨까 하고 물어보니, 다른 한국인 여행객들이 왔을 때 필요할 지도 모른다며 남겨두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타카치호 정의 어느 가게에는, 내가 쓴 안내문이 가게 앞을 장식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타카치호 신사를 거쳐 타카치호 협곡으로 향했다. 이전에 아소산 화산박물관에서 큐슈의 대표적 화산지형 중 하나로도 소개된 곳이다. 아침에 유스호스텔에서 듣기로는, 일본의 노래방 화면에 자주 나오는 풍경이라 아주 유명하다고 했다. 예시는 좀 이상했지만, 전국적으로 유명한 절경이라는 것은 확실히 알았다. 실제로 가 보니, 과연 절경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었다. 화산지형이 드문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기묘한 풍경이었다. 부족한 솜씨로 사진을 찍어 보았지만, 그 규모를 담아내기에는 내 능력이 모자랐다. 그 존재감을 느끼려면, 그 모습을 직접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근대 이래로 자연과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자연을 정복했다고 잠시 착각하던 시기가 있었다. 얼마나 허황된 꿈이었던가. 자연과학이란 결국 자연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아소산에는 교토대학 화산연구소가 상주하며 화산 활동을 관측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아소산이 분화할 기미를 발견하면, 주민들에게 경보를 울리는 역할을 맡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아소산을 정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저, 인간이 아소산과 마찰 없이 지낼 수 있게 해 주는 역할에 불과하다. 인간은 자연을 정복할 수 없다. 과연 화산은, 자연은, 재앙이자 축복이요, 더불어 살아가야 할 동반자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요카구라 상영 시각까지 시간이 남아, 저녁 식사로 타카치호규 소고기를 먹었다. 와규라고는 고베규밖에 먹어본 적이 없었는데, 확실히 고베규와는 식감이 달랐다. 고베규가 입 안에서 녹는 듯이 부드러운 식감이었다면, 타카치호규는 좀 더 육질이 탄탄하여 씹는 식감이 좋았다. 단순히 부위가 달랐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품질 좋은 소고기라는 것은 변함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도 시간이 남아, 바에 들어가 진 토닉을 주문했다. 에릭 클랩튼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고풍스런 분위기의 바였다. 바텐더와 잠시 여행 이야기, 에릭 클랩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 덧 시간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바텐더가 나를 불러 세웠다. 기념으로 가져가라며, '타카치호'라고 쓰여진 글래스를 하나 선물로 주었다. 한국까지 깨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가져가겠다고 약속하며, 나는 바에서 나왔다.
타카치호 요카구라는 타카치호 신사에서 매일 저녁 8시부터 상연된다. 전체 33막 중 4막을 상연하며, 3막은 아마노이와토에 숨은 아마테라스를 끌어내기 위해 신들이 갖은 애를 쓰는 모습을 그려내고(타지카라오의 춤, 아마노우즈메노미코토의 춤, 도토리의 춤), 마지막 1막은 일본의 창조신 이자나기와 이자나미의 애정행각을 그려낸다(고신타이의 춤). 1~3막이 그야말로 일본 전통 예능의 모습을 보여주는 반면, 고신타이의 춤에서는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관객과 함께 어울리는 서비스를 펼친다. (사진 2) 고신타이의 춤은 일본 창조의 춤인 동시에 부부관계 원만의 소원이 담겨 있다고 한다. 관객과 함께 웃고 즐기는 사이, 공연장에는 행복하고 즐거운 웃음소리가 가득 찼다.
공연이 끝난 후 나는 유스호스텔로 돌아갔다. 마지막 일정까지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과, 큐슈의 사람들과 함께 하며 즐거웠던 기억으로 가득 찬 여행 동안의 충만감. 푹신한 이불에 파묻힌 채, 나는 조용히 잠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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